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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시간

노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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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에 대하여


 

아이를 출산하고 안경과 콘텍즈렌즈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라식수술을 했었다. 벌써 20년 전이었으니 그때만 해도 라식수술은 그리 흔한 수술이 아니었다. 수술 후 다음날 눈은 시리고 아팠지만 눈을 떴을 때 환하게 보이는 시계와 달력이 눈에 들어오는데 얼마나 행복하던지. 

 

해마다 안과에 가서 눈검사를 하면서 건조증에 따른 안약을 처방받아가면서 10년을 넘게 무사히 라식으로 밝아진 나의 눈을 사랑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어느 날 글씨가 잘 안보이기 시작했다. 자꾸 글씨가 흐리고 작은 글씨를 읽으려면 두통까지 오더라.  수술을 했던 닥터께서는 "이제 노안이 올 나이야" 라며 마음의 준비도 안된 나에게 뽀죡한 화살 하나를 날려주셨다.  노안이라니... 그때가 40대 중반쯤이었다.  그래도 노안초기라 돋보기는 안 써도 버틸만했다. 

하지만 50살이 넘어가니 작은 글씨는 더이상 글씨가 아닌 게 되어버렸다.  포장용기의 글씨들은 작은 검은색 점이 되어있었고 아무리 멀리 두고 보려고 해도 안보였다.  돋보기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할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난 아직 힙하게 신용카드와 휴대폰만 들어가는 미니백을 들고다니고 싶은데!!!!

 

글씨가 잘 안보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집중력도 떨어진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친정엄마에게 참으로 무례했구나 싶은 날이 떠올랐다. 

그때 엄마는 50대이셨다. 건망증이 심해졌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엄마에게 매일매일 두뇌를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스도쿠 책과 색연필에 비밀의 정원이라는 컬러링북을 사드렸다.  그런데 엄마는 컬러링을 하지 않으셨다. 일부러 사드렸는데 깨끗한 컬러링북을 보면서 내 마음이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 속상해하고 섭섭해했다. 

왜 하지 않는냐는 나의 볼멘소리에 엄마가 하시는 답변은 항상 같았다. "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땐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도 돋보기를 쓰고 하셔야지 라면서 강요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엄마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비밀의 정원 컬러링북은 작은 꽃들과 잎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더욱 눈이 아프셨을 것이다. 

이렇게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어리석음이라니... 하긴 아이를 출산하면서 6남매를 낳은 엄마가 얼마나 위대해 보였는지...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는 말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젊은 날엔 내가 제일 똑똑한 줄 알고 살았는데 지금 그 시간들을 돌아보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렇다고.  50살이 넘은 지금의 나이에도 부족한것은 많다. 다만 젊은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에 조금 그들보다 나은 것뿐이지. 

지금의 내나이에 겪어야 하는 것들은 나도 잘 모른다. 

무엇이 어떻게 닥칠지 어찌 알겠느냐 말이지. 젊은 날엔 용기와 혈기왕성한 도전정신이 컸었다면 지금은 한발 뒤로 물어 나서 좀 더 여유가 생긴 것뿐이다.  당장 돋보기에 의지하면서 글을 읽어야 하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상황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속상한 마음이 더 많아진다.  노안 삽입 렌즈 술이라는 것을 요즘엔 많이 한다고 하지만 나처럼 라식수술을 했던 사람에겐 그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좀 더 과학기술이 발전되길 바라던가 돋보기와 친한 친구가 되던가 해야 한다. 물론 후자가 더 빠른 적응력을 발휘하겠지. 

 

늙음의 시작에서 제일 처음 받아드려야하는 것이 노안이지 싶다. 세상을 보는 눈이 한정적이 되어지는 순간.  생활의 불편함이 확실히 느껴지는 순간. 이젠 그 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어야 한다. 

돋보기를 목에 걸고 책을 읽어야하는 나이. 

그래 이제 나는 50대 중년이다. 

 

아마 지금 타임머신이 있어서 그때의 내나이 엄마를 만난다면 컬러링을 하라고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지.  그냥 엄마와 기억력 게임같은걸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씀을 드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때는 몰랐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엄마는 여전히 웃으신다. 내나이 되어봐라 하시면서.....

 


노안 presbyopia이란?  눈이 가까이에 있는 사물을 선명하게 볼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노안은 노화의 정상적인 흐름의 일부입니다. 주로 여성은 40대 중후반에 남성은 50대 초중반에 노화가 나타납니다.  어릴때는 수정체가 유연해서 모양이 쉽게 변하기 때문에 멀리있거나 가까이 있는 모든 물체들에 맞춰서 집중을 할수 있도록 해줍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게 되면 수정체가 딱딱해져서 쉽게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들에 집중을 할 수 없어서 글을 읽거나 바늘을 꿰거나 하는 근접 작업을 하기 힘들어집니다. 
이러한 노안은 두통과 눈의 피로가 동반됩니다. 
노안은 렌즈,안경,수술등으로 교정을 할 수 있으며 미래에는 안약으로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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